poem - 혁(革)

2020. 12. 20. 04:04자유 게시판

 

 

 

 

 

 

poem - 혁(革, Reform)

 

 

 - 속절없는 진도표에 발장단 맞춰,  그노시스 호 함상에서 발사된 개혁 미사일 포물선의 궤적 중  1/8은 철없는 소녀를 가루로 날려 버렸고,  다시 1/12의 궤적은 섹스를 모른다는 막달리나에게로 날아가, 흘례하였다.

 운명과의 불화로 세상살이 저버리며 낳은 식솔은 부양할 힘에 부쳐,  황야로 유배 보냈으되, 포물선의 1/8 기간 동안 뜬금없을 집착으로 유산을 탕진한 뒤,  부마를 고르고 고른 끝에 재산이라곤 손톱 끝자락에 붙은  눈꼽 때만큼도 없을 거렁뱅이와 눈 맞아 재혼하였는 바, 재혼한 지 사흘 만에 잉태된 둘째 아드님 역시  지지리도 못난 운세인지라...

 지 에미 잉태하였던 시점에서 이틀이 더 경과된 뒤, 착착 접힌 장미꽃 같은 과욕의 기울기로 날아간 총 비행 궤적의 1/3 쯤 되는 계곡 아래로 하천하였은즉 ......

 

 

 

 

 

 ( ...서기 2003년 나른한 봄자락에 묻혀,  춘화는 개혁 특별시 공간의 총체적 반발만 타격하려는,  오욕마저 희롱하는 지번에 영주하면서, 하루하루 인증된 소시민 자격으로,  검지 손가락에 결박당한 텔레타이프 전문에 체득된 궤적의 스크립터를 해독하고 있었느니... )



 

 

 

 

 

 

   - 마음을 안정시키려 심혼을 다독거려 재워보자. 재워보자.  진실함의 동력에 의해 떠댕기는 부초의 날개란 가이럽지만,  저절로 버무린 순풍은 이제 오지 않아도 그만이다.




 

 

 

 

 

 

 

 

 - 새는 물 바가지 형세를 기울이게 되면,  수평선 형국에 못미쳐 궤적이 입력된 그노시스 미사일의 포물선 전체 궤적량을 즉시 인수분해하여 타전토록 하라~ !  




 

 

 

 

 

 

 

 

 

 

 

 

 

  - 십자군 완장을 찬 스텔론 기자가 무너진 바벨탑 아래에서 타전할 즈음, 홍해를 도강한 하마신은 셈의 아들 내놓으라 바람 목덜미를 움켜 잡았다 

  Occident 진영 막사로 황혼이 밀물처럼 스며들 즈음, Oriental 언덕배기의 참호 속에선 급강하 된 기온에 맞춰 강도 높은 치킨 게임의 화롯불은 점화되었다 

  Roger 

 

 

 

 

 

 

 

 

 

 

   은하수 가로지르는 캐러반 대열, 모래 벌판 사이로  검붉은 연기가 솟구치는데,  낙타! 낙타였다 
  망원렌즈에 잡힌 두개의 피어오르는 불기둥 

 칠주야 쌓으리라 예고된 바벨탑의 불개미 집 같은 벙커는 불타 오르고,  강습하는 고대 로마병 양날검의 예리한 칼사위 같은  아라비안 나이트 Badal의 돌격대는 기필코 명증되기를 ...

  피로에 탈진한 종군기자는 피묻은 반지를 내려 놓으며 검붉은 새벽, 아라비안 나이트에 상처입은 독수리 전사가 차출될 것임을 출렁거리는 바람의 척후병은 타전하기 시작하였다 

  Ro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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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종이에 써있는 의미부호 즉 문자는 정보 그 본질이 아니라 쳐도 정보일 수 있다. 그것은 종이에 써있는 글 새김의 본질이 바로 정보이기 때문이다.

 종이가 종이로써 그 직분을 완수하든 안하든 종이는 종이인 것처럼, 우리 곁으로 흐르는 시간이 시간 자체라 아니라 우겨도 시간이 흘러가면 거저 "시간" 일 따름이다.

 뭤이냐, 영어로 치면 "to do"가 아닌 "to be"가 본질이며, 그 본질은 현상을 뜻하는 게 아니란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무엇을 해야만이 ~ " 라고 말하는 게 삶의 본질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만이" 라 말하는 게 삶의 본질에 관한 올바른 관조라 감히 말할 수 있다.

 

 

 

 

 

빛과 그림자~!

 

그 사이에 놓인 경계지번은 공간적으로 하나의 선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사실 선이란 물리적인 해석은 달겁지가 않다. 그건 정신적인 측면과 조율해 본다면, 우리가 언제나 일상생활 속에서 접하게 되는 일종의 템퍼러리의 또는 버퍼의 역할내지는 기능과 같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무슨 작업을 할 때 항상 처음의 원본과 작업 후의 결과물 사이에 중간적인 작용을 하는 , 템퍼러리 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그 중간적인 공간은 사실 무한대로 확장될 수도 있는,아주 중요한 초현대적 중요 개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빛 속에서도 무수한 어둠과 중간 회색지대가 존재함을 알아야 하고, 이것은 ' 중의 이법 '에 가장 근접한 영역인 셈이다.

 

과정 , process !

 

우린 어떤 결과물을 얻기 위하여 어떤 수순과 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결말에 도달할 수도 아니면 동일한 결과물을 취득할 수도 있다.

 

다만 어떤 프로세스를 채택하느냐에 따라 우린 그 방식에 따른 수순을 밟게 된다.


이것은 운영체제에 관한 룰의 이야기다.

 

 어떤 사물을 관조하고 이용하는 방법론에서 우리가 새로운 운영체계의 알고리즘을 창조한다는 건 바로 어떠한 발상의 단서와 동기성에 입각한 출발점이었느냐? 에 따라 전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쩌면 똑같은 결과가 생성되어 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조작업은 결국 Buffer 란 Temporary 그릇 속에 어떤 철학적 기소점 하의 깊은 사유가 담겨 창조되었느냐에 따라 천양지차 그 결과물은 다르게 결정되어 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본질의 변화 뒤에 일어나는 제 현상을 우린 현상의 모든 것이라 보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의 근본적인 변화이기 때문에 종이가 종이일 수 없듯, 경우에 따라 종이에 새긴 바달의 문양이 될 수도 있으며,  
어느땐 백지 위에 기술된 사막의 밤별, 창녘을 두두리는 베르테르의 밤별, 세레나데 한 자락도 될 수 있을 터,  

 백지장 위에 끄적거린 한 줄기 의식의 흐름은 그 본질의 원초적 변이로 말미암아 지평선 저편 멀리에 놓인 마음의 파동 한 자락을 출렁일 수도 있을 터! 

 그 파동의 한 달음이 시공간 상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권역과 들을 수 있을 가청권 그리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가심권역을  
그 자신도 전혀 인식치 못하는 사이, 저 먼 우주의 극무한대로 확장시킬 수 있을, 그런 만남의 첫 걸음은 아닐런지 ... 하고 
  
 무릇 현상보담은 본질 속에서 성찰하며, 본질적인 삶의 의미 부호를 서로에게 각인시키며 그 인식의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부디 소원되기를 ...

 

 

 

 

 

  상기의 동영상에서 현대 양자역학에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모순점을 타개해 내기 위해 천문학을 중심으로 '다중우주론'이 나왔는데, 과학자 김상욱 씨가 말하는 실재 우주론은 모든 것이 프로그램화 되어 있는 '정보 우주'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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