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옆집 물리학]-인연

2020. 12. 10. 15:30자유 게시판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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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책에 나오는 아내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헌정사다.  어디 칼 세이건과 앤 뿐이겠는가.

 

  우주의 공간적 규모에 비하면 티끌처럼 작은 행성인 지구에서,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찰나를 살다 사라지는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진다. 수많은 우연이 겹쳐야 가능한, 일어날 확률이 거의 0인 사건이다.

 

  두 사람의 사랑 얘기뿐이겠는가. 걸어가다 옷깃만 스쳐도, 모든 인연은 천문학적 규모의 우연이다. 인연의 소중함은 우연의 확률에 반비례한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내 몸을 이루는 원자들을 떠올리고 이들이 모여 내 몸을 이루는 과정이 담긴 상상의 동영상을 머릿속에서 거꾸로 돌려본다. 내 손톱을 이루는 한 원자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동영상에서 얼마 전 내가 먹은 고등어에 들어 있고, 그 전에는 바닷물 속에 보인다. 동영상이 너무 더뎌 고속으로 바꾸고 기다리니, 지구 형성 이전 우주 공간을 떠돌던 암석 안에 이 원자가 보인다.

 

  시간을 거꾸로 더 진행시키니, 태양계를 이루는 많은 물질을 만들어낸 초신성 폭발이 보이고, 이 원자는 폭발 전 커다란 항성 안에 있었다.

 

  이 장면에서 멈추고 원래의 시간 방향으로 동영상을 재생해보자. 항성 안에서 바로 옆에 나란히 있던 두 원자 중 하나는 지구로 와 바닷물 속 고등어가 되었다가 내 손톱이 되고, 이웃 원자는 이제 저 멀리 목성에 있다. 목성의 대기는 내 손톱의 형제자매다.

  우주 곳곳을 돌아다니다 태양의 중력에 묶여 어쩌다 함께 뭉친 원자가 지구가 되고, 지구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원자가 어쩌다 모여 내가 되었다.

 

  내가 죽고 나면, 이들 원자는 또 곳곳으로 흩어진다. 지금 나를 이루는 원자의 모임에서 시작해 시선을 과거로 돌리나 미래로 돌리나, 원자들은 공간에 흩어진다.

 

  나는 우연으로 모인 많은 것이 다시 흩어지기 전 잠시 머무는 시공간의 한 점이다.

  당신의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 하나가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와 자리를 서로 바꿔도 나는 나고 당신은 당신이다. 원자는 어디에 있든 똑같기 때문이다.

 

 내 몸을 이루는 물질을 성분 원소로 나눠 볼 수 있다. 하지만 화학용품을 파는 상점에서 여러 물질을 구입해 적당량의 물에 넣고 휘휘 저어도, 원자가 모여 내가 되지는 않는다. 내 몸 안 원자는 특별할 것이 전혀 없다.

 

  딱 하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내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뿐이다. 우리 각자의 소중함의 물질적 근원은 원자들의 대체 가능한 사소함이다.

  우리 각자는 결국 원자들의 엄청난 우연의 모음이고, 이렇게 천문학적 우연이 만들어낸 두 사람이 천문학적 우연으로 만나 사랑에 빠진다. 시공간의 두 티끌이 각기 공간에 흩어지기 전 반짝 한 점에서 일어난 우연한 조우는 결국 인연이 된다.

 

 

 

 

 

 

 

  내게는 부모님이 두 분이니 조부모는 네 분이다. 조부모님 네 분의 부모님은 모두 여덟 분이다. 나로 시작해 세대를 거슬러 오를 때마다 두 배씩 선조의 수가 늘어난다. 이렇게 과거를 향해 분기하는 가지에 놓인 선조 중 한 사람이라도 배우자를 달리했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우연으로 만들어졌지만, 각각의 수많은 우연은 인연이 되어 나로 이어진 셈이다. 나와 아내의 조우로 미래로도 분기가 시작된다. 아래를 보면 분기하는 뿌리가, 위를 보면 분기하는 가지가 보인다.

 

  과거로의 분기와 미래로의 분기가 만나는 한 점이 내가 있는 곳이다. 매번 가지의 분기는 우연이지만, 현실의 옷을 입은 우연은 인연이 된다. 나를 만든 것은 하나같이 우연이지만, 결국은 모두가 인연이었다.



  우연 중에는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쉬운 것도 있다. 우리 인간은 어떤 일이나 원인과 행위자가 있다고 짐작하는 생각의 기제가 장착된 존재다. 기쁜 우연에 조상님에게 감사할 것도, 슬픈 우연에 묫자리를 탓할 것도 없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여러 우연의 중첩으로 출현한 인연이 소중하다. 수많은 우연이 모여 인연이 되지만, 한순간 인연으로 새로 시작되는 앞날은 우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