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 단단한 뼈 / 이영옥

2021. 1. 14. 09:22자유 게시판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 詩  '  당선작


  '    단단한 뼈    ' 

                시인  - 이영옥


 실종된 지 일년 만에 그는 발견되었다.

 죽음을 떠난 흰 뼈들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독극물이 들어있던 빈 병에는 바람이 울었다.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온 경찰차가 사내의 유골을 에워싸고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진 웃음을 분리하지 않고 수거했다.

 비닐봉투 속에 들어간 증거들은 무뇌아처럼 웃었다.

 접근금지를 알리는 노란 테이프 안에는

 그의 단단한 뼈들이 힘센 자석처럼 오물거리는 

 벌레들을 잔뜩 붙여놓고 굳게 침묵하고 있었다.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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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옥 시인의 시는 감정의 발로 없는,  한 편의 묵정한 수채화를 닮았다.


  동아일보를 통한 신춘문예 등단 이후로도 일관된 그의 수준 높은
발표작들은 한결같이 어떤 마음의 경지에 서서 시지프스가 기어 오르던 언덕배기의 칠부 능선을 헤아려 보는 그런 것이라고 해야 하나 ...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존재의 영원과 유한성에 어떤 아스라함을 느끼게 한다.

  마치 작두타는 무당과도 같이 일년이 넘게 방치된  시신에 달라붙은 벌레라는 미생물체에게까지 시인의 예리한 시선은 헛투루 가만두질 않는다.


하여 죽음 속에서 죽음을 건져 올리고, 감정의 물결 속에서 물결을 두레박에 첨벙 ~담아 절망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방향성을 잃은, 제 군상의 존재들에 관한 스냅샷을 포착하여, 4차원적 리트머스 시험지에 비정하고 삭막한 현실세계의 치부를 여여히 들춰낸다.  


  시대가 흘러가는 제 현상의 단층에  단순하다면 너무 간단할 수도 있을 ... 어떤 자살 사건을  마지막 퍼즐 끼워 맞추듯 하여 한 폭의 ' 주검의 미학 ' 이란 제하의 수채화로 승화시킨다.

 

   인간이 어떤 이유에선가 그 스스로를 다스려 농약인지 독약인지를 마시고 숨을 내리기까지  그 치열했었을 자기 고뇌와 포기 각서 문건이  이영옥 시인의 범접키 어려운 시편 속에서 단맛 사라진 한 잔의 블랙 커피와 더불어져  ...  한 알갱이 각설탕처럼 징하게~ 녹혀져 있다.

 

  실로 이영옥 시인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고 바람처럼 스치는 모든 사건들을 차분하게 시혼의 경지에 서서 우리들에게 다분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게 만드는 혼맥의 전령사이기도 하다. 다가오는 미래에는 이러한 인문학의 내공을 가진 시인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우리 도처에 존재하는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 ,  고독사 문제가 불거지는 연상은 덤이다.  

 

 

 

 

 

 

 

 

 

당선 작가의 뒷 담화 :

 

  어릴 적 내가 자란 경주시 인근은 가을이면 황금물결로 출렁거렸다.

 

  부잣집 외아들에 천재라고 소문이 난 청년이 실종되었는데, 어느 날 경찰 사이렌 소리가 조용하던 마을을 발칵 뒤집었다. 벼를 베던 사람이 농약을 먹고 자살한 시신을 발견한 것이다. 행방을 몰라 발을 구르던 가족들을 비웃으며 그는 백골이 된 상태로 바람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어른들이 아이들은 보지 못하게 막았다. 그 와중에 제 육신을 미처 수거해 가지 못한 그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아주 짧고 기이했던 만남. 순간 나는 무질서와 혼란을 넘어선 고요 속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내 시원(始原)의 단초가 될 줄 몰랐다. 그는 모든 고통에서 달아나 태초의 평온에 안겨 있는 듯 보였다.

 

  등단작 ‘단단한 뼈’가 말하고자 했던 존재의 영원성, 겨우 일곱 살 되던 해에 잔망스럽게도 시인의 기미가 나를 찾아 왔던 것이다.

 

  시를 쓰기 시작하고부터 삶과 죽음은 어떤 통로로 인간에게 오고 가는지 그 긴 의문은 ‘어느 형식의 고해’라는 산문시에 담겨 몇 년이 흘렀다. 2004년 신춘문예 마감을 앞두고 퇴고를 하는 과정에 ‘단단한 뼈’로 제목이 바뀌었고, 동아일보에 응모해 당선되었다.

 

  그러나 당선의 기쁨도 잠깐,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죽음’이라는 소재가 어느 문예지 당선작과 같다는 이유였다. 표절의 의혹을 담은 메일을 각 언론과 문학 단체, 그리고 이름난 작가들에게 보낸 사람은 재작년 타계한 박모 시인이었다.

 

  당시 그 분은 이미 대단한 위치의 시인이었다. 시인의 시는 거침없는 통찰로 부조리를 시원하게 관통했으므로 문청시절 특히 좋아했다. 아무리 중앙지 신춘문예지만 한낱 무명 시인의 등단에 무슨 관심일까 의아했다.

 

  알고 보니 자신이 트레이닝 시켰던 문청이 동일 일간지에 응모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내 작품이 낙점되어 그를 화나게 만든 것이었다. 밤낮없이 심한 욕설로 전화를 해대는 통에 족히 두 달은 시달렸다.

 

  나뿐만 아니라 본심을 했던 선생님도 괴롭힘을 당했다. 시작도 해보지 못한 문학에 회의를 느꼈지만 “시는 모험 한가운데에 있다”란 말로 나를 다독였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때의 일로 요즘도 악몽을 꿀 만큼 누구보다 혹독한 등단이었다.

 

  그 일이 있고 2년이 지난 2007년 겨울, 그가 부산의 문학행사에 참석했다. 눈빛은 활화산처럼 들끓었지만 낯가림 때문인지 말수가 적었다.

 

  지방 특유의 따뜻한 환대에 마음이 녹았는지 뒤풀이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편견이 무너지니 무섭기만 했던 광기도 개성으로 느껴졌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불화는 섬약한 자신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배웅 인사를 건네자 답례로 발표작을 잘 보고 있다고 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등단작의 주인공인 비운의 천재 청년이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향해 타~앙, 방아쇠를 당기고 사라진 박모 시인이나 태초의 평온에 고요히 닿아있길 바란다.

 

cafe.daum.net/lebzoa/FQkd/38

 

 

 

 

 

 



생일전야 / 이영옥 

 
 남자는 달려오는 빛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급한 순간에는 어떤 기억도 저항하지 못한다 

남자의 몸이 파닥거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남자의 주변으로 살비듬같은 햇살이 잠시 푸슥그렸다 

호주머니 속에서 끌려나온 유서는 창백했다 

 

세상의 고통들은 왜 똑같은 모서리를 가질까

남자의 절망은 여러 번 접혀진 채 천천히 닳아왔을 것이다 

 

휘갈겨 쓴 모음과 자음들이 더듬거리며 남자를 변명했다 

 

생일전날 날짜가 맞아 떨어진 것은 순전히 남자의 수학적 강박 때문이었다 

 

TV를 켜자 아홉시 뉴스앵커가 알맞게 경직된 하루를 부검하고 있다 

어두운 터널은 놀란 동공처럼 아득히 뚫려 있고 

남자의 반 지하 단칸방에는 미역이 양푼을 검게 부풀리고 있었다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부드러운 슬픔 / 이영옥

    

너와 함께 강변에 앉아 있었다


미동 없이 앉아 있는 해오라기는
아직도 슬픔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 고요한 시간이 마른 날개를 축였다
너는 나에게 물수제비를 떠 주었다

물장구를 치며 멀리 달아나는 돌
너는 웃었고 나는 적막해졌다

너는 돌이 달려간 미래를 생각했고
나는 돌이 내려갈 깊이를 생각했다

존재는 나아가지 않으면 가라앉는다
두 세계는 그렇게 멀어져 갔다

둥근 파문들이 물 위를 지나갔다
그것은 텅 빈 것들의 이어짐이었고
우리들의 외로움도 뒤따라갔다


사라지는 것들의 자욱함에 숨어
우리들의 슬픔도 한껏 부드러워졌다

 

-『현대시』(2011년 12월호)


 



밥상 위의 명태 한 마리 / 이영옥

 
그는 침침한 백열등 밑에서 저녁을 먹는다
굳어버린 혓바닥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밥상이 곤두박질 칠 때 마다
늙은 아내는 깨진 것들을 천천히 쓸어 모았다


그를 지탱하던 의식들은
이빨 나간 그릇처럼 쓰레기 통에 처박히고
치욕은 아내의 손톱 밑에 파고 든 양념찌꺼기 같았다


한바탕 울분 뒤에
몰아쳐 오는 적요는 언제나 쓸쓸하다


그는 잘 씹히지 않는 명태를 우물거리며
바다 속의 깊은 적막을 우려낸다


하루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명태 한 마리의 온전한 고독이 필요할테지


관자놀이의 힘줄이 불끈 일어선다
내 영혼은 얼마나 더 능멸당해야 잠들 수 있나


꿈에서 조차 그는 말을 더듬는다


그는 마른 명태처럼 딱딱해진 생각들
탕탕 두둘겨
북북 찢어 놓고 싶었다


환멸에서 생비린내가 났다


백양나무가 바람든 뼈를 끌고 방안으로 들어 왔다


누런 이파리들의 밭은 기침에서 튀어나오는
죽음의 파편들


그는 온몸에 어둠을 퍼담고 고즈넉하게 저물어 간다


처마 밑의 마른 명태는
먼지를 한겹 두른 후 하루 더 희망을 품기로 했다

 

2004년 제3회 계간 <시작> 신인상 당선작

 

  이영옥의 시는 고전적이되 결국 모던하다. 삶의 뼈아픈 이치들을 세공해 공식화해 버린 뒤 아무 미련 없이 공기 중으로 흩어 버린다.

 

  그것이 독자들의 폐부에서 냉정한 깨달음을 길어 올릴 때 우리는 왜 인간은 기필코 따뜻해야 하며 문학 안에는 왜 철학이 사무쳐 있는 것인가를 호흡하게 된다. 이영옥의 시가 인간이라는 물음표를 향해 한 방 훅을 먹이며 들어가 휘청, 세계가 흔들려 저 쓸쓸한 심경을 빚어낼 때 그것은 시가 아니라 홀연 아름답고 슬픈 여인이 된다.

 

  이영옥의 시들이 가지고 있는 과하지 않은 수사학은 감각의 절제라기보다는 단단한 수수함이다. 공학(工學)이되 결국 선(禪)인 시. 시인 김수영이 여인의 몸을 빌려 환생했다면 아마도 지금 이런 시들을 쓰고 있을 것이다.

 

- 이응준 (소설가, 시인)

 

 


  언어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면, 그런 때도 시는 존재할 수 있을까? 이영옥의 시를 읽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의 시는 과장이 없고, 비약이 없으며, 과도한 자의식도 없다. 그의 언어에는 다른 각도가 있을 뿐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각도에서 그의 언어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건을 어마어마하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와중에서 우리를 잠시 멈추게 만든다. 나는 그것을 시간의 무게라고 부르고 싶다.

 

  그 무거운 무게를 언어로 옮기는 것이 이영옥의 시다.

 

  언어로 조직되기 전에 사건과 사건으로 조직되어 가는 시. 씨줄과 날줄로 짜인 한 폭의 천이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우리 삶의 풍경이고, 풍경의 울음이다.


- 함성호 (시인, 건축가)

 

 

 


  이영옥의 시편들은 “시야를 확보할 수 없는 곳”을 “커브를 돌던 조바심으로” 민첩하고 정확하게 포착하는 “도로반사경”과 같다.

 

   그래서 그의 시 세계는 누구보다 “허무의 심연”, “불화하는 어둠”, “바람에 뜯긴 심장”, “웃음이 가진 적막”, “나무의 물소리” 등 삶의 사각지대의 비경을 뜨겁고도 날카롭게 노래해 낸다.

 

   “생이 반듯하게 와서 반듯하게 멀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의 시편들은 어느새 우리 모두의 “로드킬”을 밝혀 주고 지켜 주는 모성적 위안과 치유의 거울이 되고 있다.


- 홍용희 (문학평론가, 시작시인선 기획 위원)

 

 

 

. 이영옥 시인 일곱 번째 시집 『어둠을 탐하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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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신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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