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箱 - 이상(異常)한 가역반응(可逆反應)

2021. 1. 5. 04:56자유 게시판

 

. 빛 그리고 또 다른 자아로써의 광속 운행 

 

 

 

 

  일제시대에 태어나 27세의 짧은 생애를 살다 다시 우주로 돌아간, 한국 현대 문학의 작가인 (시인,소설가) '李箱, Lee sang' 시인의 난해한  - "이상한 가역반응" 시는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이상(李箱) 시인 겸 소설가의 대표작 소설인 " 날개"의 주요 내용은 분열된 자의식의 흐름을 명료히 기술해 낸 소설로 분열된 자아의 두 모습을 정교한 심리적 묘사로 그려내고,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 나오는 ' 날개 '의 비상에 관한 염원을 통해서 분열된 자기 자신의 자아를 결합시켜 , 나아가선 자기 구제내지는 구원를 꾀하는 자기 실존적 의지를 추상적으로 그려낸 원숙한 근대 문학 소설로써 유명한 한국의 천재적인 불세출의 작가이다.

 

 각설하고, 빛~!, 이 명제는 우리 현대 과학 특히 물리학에서 너무 잘 알려진 익숙한 물질이다.  그 빛의 다발들은 공기나 유리처럼 그것들이 통과할 수 있는 물체에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그것은 빛이 아직은 이 세상에 탄생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햇빛은 이처럼 투명한 곳에선 그 형체를 보여주지 않다가 빛이 통과하는 매질을 통과하는 경우 파장의 굴절률이 각기 다른 만큼의 반-투과성 매질인 프리즘 물체를 만나게 되면, 비로소 그 여러가지 본래의 다채로운 빛의 형상을 나타내 준다. 

 어떤 물체와 빛이 만나기 전에, 빛이 우주 공간을 광속 운행하고 있는 동안에는 즉, <입체>가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는 결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제 햇볕이 방바닥에 책보나 손수건의 형상이 보여지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보이지 않는 빛의 형상을 단숨에 드러내게 하는가?

 그것은 어떤 물체가 빛이 쉽게 투과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광속에 비해 속도가 지극히 느린 물체 같은 느린 현실을 만나서 빛의 광속 운동이 중지됨으로써, 운동에의 절망에 의하여 빛은 하나의 멱(冪)을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멱(冪, Wrapping Cloth, 덮을 멱)이란 일종의 보자기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쉽다. 이 멱(冪)은 운동의 절망에 의해서 탄생한 하나의 막으로 분리된 새로운 경계 차원이다.

 

 사실 멱(冪)이란 개념은 생소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카를로 로벨리가 쓴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란 책에서 보면 ' 시간이 흐르는 자체의 동력학을 지니고, 아인슈타인의 중력방정식에 의해 기술되는 실체인 중력장에 의해 결정된다. 양자 역학을 무시하면, 시간과 공간은 우리를 담고 있는 거대한 젤리의 양상이다. ' 라고 써 있는 것으로 미루워 짐작컨데, 아마도 이런 젤리의 양상 같은 게 바로 멱(冪)인듯 싶으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의 자아들도 광속으로 햇살처럼 운동하다가, 광속에 비해 속도가 지극히 느린 현실이라는 세계를 만나 그 운동에의 절망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 낸다는 뜻이다.



 이 내용은 ‘이상한 가역 반응’ 싯귀에 나오는 " 圓內의 一點과 圓外의 一點" 이란 문맥과 상통되어지는 내용이며, 또 다른 그의 시 ‘ 선에 관한 각서 7 ’에서 나오는 " 광선에 비할 때 참 너무도 열등하구나 " 란 싯귀와도 잘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다.

 또한 이와 같은 운동에의 절망은 곧 입체의 절망도 되는 것이니, 빛이 광속으로 더 운동하지 못하고, 어떤 물체에 부딪치면 더 이상의 <입체>는 성립하지 않음으로써 명확히 설명되는 것이다. 또한 운동에의 절망과 입체에의 절망은 탄생과 붕괴와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우주 본연의 존재로써의 자아가 시공을 초월한 우주 시공간 상을 빛의 속도로 운동하던 자아가 광속보다 현저하게 느린 우주를 만나 그 운동을 멈추면, 그 자아는 절망하여 사람 몸속에 깃들어 (인간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탄생이 그렇게 이루어지며, 사물의 탄생이 곧 그러할 것이니,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우리가 사는 지구, 더 나아가서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의 탄생이 그러하다는 말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탄생의 진리를 보여주는 작가의 추상은 어쩌면 일반 독자들에게 좀처럼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암호문일지도 모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이상(李箱) 시인은 우주 만물의 탄생에 대해서 난해한 시어로 그의 의사를 표현하였는 바, 소멸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치 않다. 조금만 더 생각해본다면 운동하던 자아를 막아 운동과 입체를 절망시키는 벽이란, 우주에 탄생한 인간의 몸을 비롯한 만물이 될 것이니, 그 벽들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자아들은 육체를 빠져나와 비상의 ‘날개’를 달고, 양자 역학의 세상에서 다시 광속 운동을 하게 될 것이므로, 결국 만물의 탄생에 관한 생각은 곧 만물의 소멸에 대한 것과도 서로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란 의미다.

 이것은 우리의 육신이 죽으면, 우리의 자아는 새로운 날개를 얻어, 4차원을 떠나 다시 5차원 세계를 광속으로 운동해 갈 것이라는 의미로, 13인의 아해가 질주하는 막다른 골목이 육신의 끝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아의 또 다른 출발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의 소설 ‘ 날개 ’ 의 마지막 부분과 그의 ‘시 제1호’는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이상(李箱)의 난해한 시 -‘이상한 가역반응’ 역시 이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

 이 육신의 소멸에 관하여 그가 자세히 기술한 시가 있는데, 그것은 오감도 ‘시제8호 해부’를 들 수 있다.

( 지구는 빈집일 경우 봉건시대가 눈물이 날만큼 그리워 진다 )

이 싯귀 행은 그의 자아가 운동하는 속도를 광속보다 훨씬 빠르게 날아 오랜 과거로 돌아갔을 때의 느낌으로, 태초의 아무도 살지 않는 시대, 인류가 탄생하지도 않은 시대로 다시 돌아갔다고 생각한다면, 사람이 그나마 봉건시대일지라도 눈물이 날만큼 그리워 진다 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기 본연의 자아 속도를 조절하면, 누구나 성숙한 깨달음~! 그 하나만으로 이 드넓은 대 우주 시공간상의 시간을 거슬르거나 앞질러 시간의 과거로도 미래로도 각성된 자아가 나아가는 대로 마음대로 날아갈 수 있다는 비상과 그 의미가 상통한다.

그의 역작, <날개> 의 마지막 대목을 첨언하면서 이 시의 배경 설명을 마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2020.4.25. writing by Chun. 


이상(李箱, Lee sang)의 난해한 Poem - 이상(異常)한 가역반응(可逆反應) 

 

 Poet : Lee sang

                                                   

 

 


  .     엽록체의 이상한 가역반응  

 

 

  이 세상에 도처에 널린 식물에게는 각별한 장치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가장 진보된 초 미세 태양전지입니다.

 식물의 엽록체는 지난 30억년 동안 태양 에너지를 수집하면서 진화를 거듭해 온 극도로 미세한 최첨단 태양전지입니다.

식물이 지구를 뒤덮은 지 수억년 만에야 비로써 꽃을 피웠습니다.

이 식물의 잎과 이끼 무리에는 '기공'이라는 수십만 개의 미세한 입이 있습니다.

식물은 기공으로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와 양분을 배출하는데, 그 잎에 해당하는 엽록소는 햇빛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분자이며, 에너지 공장입니다.

  햇빛이 녹색 엽록소 분자에 닿으면 즉각적으로 화학반응이 일어나면서 뿌리에서 흡수한 물 분자를 분해시켜, 고-에너지 전자들이 풀려 나게 만들고, (비축해 둔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작업을 이어가기도 하면서) 풀려난 전자들의 고-에너지가 이산화탄소와 물의 수소를 결합시키고, 그 결과물인 당은 태양 에너지를 열매나 뿌리 속에 차곡차곡 탄수화물로 저장해 둡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태양 에너지를 움직이는 생물권은 전 인류 문명의 6배나 되는 동력을 수집하고 처리한다고 합니다.  식물은 인간없이도 살 수있지만, 동물은 식물없이는 절대 살 수가 없다고 하죠. 식물은 의식주에서 자체적으로 옷와 주거지가 해결된 생물체입니다. 먹는 것은 오로지 낮에 비춰주는 하늘의 햇빛 뿐입니다.

  그런 반면에 동물은 옷만 해결된 생물체입니다. 어디에선가 영양분을 끊임없이 보충해야 살고, 또 머물면서 자식을 양육하고 보호할 거처도 필요합니다. 옷는 온 몸을 가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거의 필요치 않습니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점차 옷이 필요하게 되었답니다.  물론 원시인 시절엔 우리 역시 옷도 없이 맨몸으로 뛰어 다니던 시절이 있었을테지만 말이죠.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머물고 쉴 보금자리와 몸을 보호하는 옷 그리고 먹을 양식이 필요한 가장 불완전한 생물체입니다.  그러나 지성과 이성을 지닌 오감체의 동물이기도 하지요.

인간이 한 번 숨을 쉴 때마다 폐속으로 약 1억개의 분자를 들이 마신다고 합니다.


 

 [詩] - 이상한가역반응(異常한 可逆反應)

         - 李箱(Lee Sang)  

 

 


  임의의 반경의 원 (과거 분사에 관한 통념)

  원 내의 한 점과 원 외의 한 점을 연결한 직선
  두 종류의 존재의 시간적 영향성
  (우리들은 이것에 관하여 무관심하다)

  직선은 원을 살해하였는가

  현미경
  그 밑에 있어서는 인공도 자연과 다름없이 현상되었다.


            x


  같은 날의 오후
  물론 태양이 있지 아니하면 아니 될 곳에 존재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보조를 미화하는 일도 하지 아니하고 있었다.

  발달하지도 아니하고 발전하지도 아니하고
  이것은 분노이다.

  철책 밖의 하얀 대리석 건축물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진진5"의 각 바아의 나열에서
  육체에 대한 처분법을 센티멘탈리즘하였다.

  목적이 있지 아니하였더니만큼 냉정하였다

  태양이 땀에 젖은 잔등을 내리쬐었을 때
  그림자는 잔등 전방에 있었다

  사람은 말하였다
  "저 변비증 환자는 부잣집으로 식염을 얻으러 들어가고자 희망하고있는것이다."
  라고 ......

 

 

Étrange réaction réversible

                                             Lee sang

 Un cercle à partir d'un rayon arbitraire (au participe passe)

 Une ligne droite liant un point du cercle à un point hors du cercle

 Influencabilité dans le temps de ces deux sortes d'existence
(Nous, nous y sommes indifférents)

 LA LICNE A-T-ELLE ASSASSINÉ LE CERCLE ?

 Un microscope
   Dessous, l'artifice comme la nature deviennent identiquement des phénomènes.


          X


 L'après-midi du même jour

 Non seulement, bien sûr, le soleil se trouvait ou il ne pouvait 

pas ne pas se trouver, mais il n'embellissait même pas la cadence 

qui ne pouvait pas ne pas l'être.

 Il n'y a pas de progrès ni d'évolution
 C'est la colère.

 Dans un alignement de barres avec angles de zéro degrés cinq secondes
 Où se dressait, grandiose, un immeuble de marbre blanc derrière une grille de fer 
 J'ai été pris d'un vague sentimentalism devant la liquidation de ce corps.


 N'ayant pas de projet, j'ai gardé mon sang froid.

 Quand le soleil enfin a chauffé mon dos mouillé de sueur
 L'ombre se trouvait devant le dos.

 L'homme a dit :
 << Ce souffreteux constipé veut entrer dans une maison de riche pour 

demander du sel. >> ......

 

 

 

아래 해설 부분은 청가인 작가의 해석문을 옮긴 글입니다.

 

먼저 이 시의 제목을 살펴보자. ‘이상한 가역반응’...  그의 시는 늘 그렇듯이 시의 제목에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가역반응, 무슨 뜻일까? 과학을 배운 사람들, 특히 화학을 배운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말일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가역반응 :

 

화학에서 정반응과 역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는 반응. 되돌이 반응이라고도 한다.예를 들어 말하면, 수소가 산소와 결합하여(연소되어) 물이 되는 반응을 정반응이라고 한다면,  그 물을 다시 전기분해하여 수소와 산소로 분리시키는 것은 역반응이 되는 것이다.

  쇠를 그냥 놓아두면 녹이 슨다. 산소와 쉽게 결합하는 성질을 지닌 철이 혼자서 자연 상태에 놓이게 되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은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자철석이나 적철석과 같은 안정한 산화철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 산소가 쇠와 결합하는 반응을 정반응으로 본다면, 역반응은 제철소의 거대한 용광로 안에서 일어나는 환원반응이 될 것이다.

  가역반응은 보통 화학반응이 일어날 경우에 생각하는 개념으로, 물리적 변화에 대해서는 가역반응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화학반응이란 반응하기 전의 물질 상태와 그 반응의 결과로 생성되는 화합물의 성질이 서로 다른 경우로 한정된다. 

  예컨대, 모래와 자갈을 섞었다가 다시 분리하는 경우, 이것을 가역반응이라 부르지는 않으며 반응이라는 용어 자체도 사용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우리는 그것을 혼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정반응은 무엇이며 역반응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가역반응이 왜 이상하다는 것인가? 이 문제들이 풀리면 이 시의 해석도 가능하게 된다.

  결론을 말하면, 정반응은 탄생이고 역반응은 죽음이며, 탄생하고 죽는 두 반응은 가역적으로 일어나는 가역반응이다.  탄생과 죽음이 가역반응이므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돌아간 자아가 다시 3차원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또 죽게 된다.

  그렇다면 이 가역반응이 왜 이상하다는 것인가? 운동하던 자아가 3차원의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때가 되어 다시 시공을 초월한 본연의 자아 세계로 되돌아가는 반응.

  이것은 그의 까마귀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도 명확하게 일어나는 가역반응임에도 불구하고, 13인의 아해들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무서운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 가역반응이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사람이라면 막힌 골목을 향하여 그처럼 질주를 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한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막힌 골목으로 질주하다가 지극히 짧은 생을 마치고 역반응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반응이 오감(烏瞰)의 눈을 가진 그에게는 놀랍도록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이 ‘이상(異常)한 가역반응(可逆反應)’ 인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가 이 시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간단하다. 

  독자들로 하여금 정반응-자아가 육신의 삶이 되는 탄생 과, 역반응 즉슨 육신이 죽어 다시 원래의 자아 세계로 되돌아가는 현상을 당신들도 절실히 느껴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역반응은 지적 능력이 우수한 호모 사피엔스라면 누구든지 관심을 가지고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인간으로 태어난 의미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삶으로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해설

 

 

제 1구절}=> : 任意의 半徑의 圓 [ 過去分詞의 時勢 ]

제 2구절}=> : 圓內의 一點과 圓外의 一點을 結付한 直線

제 3구절}=> : 二 種類의 存在의 時間的 影響性

제 4구절}=> : (우리들은 이것에 관하여 무관심하다)

제 5구절}=> : 直線은 圓을 殺害하였는가

제 6구절}=> : 顯微鏡

제 7구절}=> : 그 밑에 있어서는 人工도 自然과 다름없이 現象되었다.

 

 제 8구절}=> : 같은 날의 午後 

 제 9구절}=> : 勿論 太陽이 存在하여 있지 아니하면 아니 될 

제10구절}=> : 處所에 存在하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11구절}=> :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步調를 

제12구절}=> : 美化하는 일까지도 하지 아니하고 있었다. 


제13구절}=> : 發達하지도 아니하고 發展하지도 아니하고 

제14구절}=> : 이것은 憤怒이다. 


제15구절}=> : 鐵柵 밖의 白 大理石 建築物이 雄壯하게 서 있던 

제16구절}=> : 眞眞 5"의 角 바아의 羅列에서 

제17구절}=> : 肉體에 對한 處分을 센티멘탈리즘하였다. 

  
제18구절}=> : 目的이 있지 아니하였더니 만큼 冷靜하였다. 

제19구절}=> : 太陽이 땀에 젖은 잔등을 내려 쬐였을 때 

제20구절}=> : 그림자는 잔등 前方에 있었다. 


제21구절}=> : 사람은 말하였다. 

제22구절}=> : 「저 便秘症 患者는 저 富者 집으로 食鹽을 얻으려 

제23구절}=> :  들어가고자 希望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

 

 

 

시 귀절 해설

 

任意의 半徑의 圓 [ 過去分詞의 時勢 ] 

Un cercle à partir d'un rayon arbitraire (au participe pa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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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구절}=> : 임의의 반경의 원 [과거분사의 시세]

원은 그가 제시한 3차원인 우주의 모형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분사의 시제로, 이미 존재하여 온 것으로 본다. 


기독교의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 신이 창조하기 이전에서부터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원내(圓內)의 일점(一點)과 원외(圓外)의 일점(一點)을

결부(結付)한 직선(直線) 

 이 종류(二 種類)의 존재(存在)의 시간적(時間的) 영향성(影響性) 
  (우리들은 이것에 관하여 무관심하다) 

 

Une ligne droite liant un point du cercle à un point hors du cercle 

 Influencabilité dans le temps de ces deux sortes d'existence 
(Nous, nous y sommes indiffér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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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구절}=> : 원 내의 일점과 원 외의 일점을 결부한 직선


이것을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나타내보면 원을 통과하는 직선의 형상이 떠오를 것이다. 


원은 3차원의 세상이며 직선은 자아를 형상화시킨 것으로 극히 짧은 동안 원과 만났다가 다시 직선의 형태인 자아로 돌아간다. 원과 직선이 만나는 순간이 우리가 지구상에 태어나-정반응 살아 숨 쉬다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역반응이 사람의 일생이다.


 

제 3구절}=> : 이 종류의 존재의 시간적 영향성

제 4구절}=> : (우리들은 이것에 관하여 무관심하다)

3차원의 입체를 어떤 이유로 2차원인 원으로 표현한 것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이 자아의 삶에 비해 찰나적이라는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이러한 가역반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이란 2차원을 붙어살다가 죽고 마는 동물들의 삶과 다름없다는 독설이 그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그가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 여러 번 표현한 바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지도의 암실’에 나온 딱정버러지 와 ‘종생기’에 나오는 동물의 왕국-애니멀 킹덤 이라 쓴 표현이 바로 그런 것이다.

원과 직선... 이 두 종류의 존재의 시간적 영향성에 대하여 잘 설명한 그의 다른 시들이 바로 ‘삼차각 설계도’에 나오는 ‘선에 관한 각서’들이다. 

그 중에서도 ‘선에 관한 각서2’와 ‘선에 관한 각서4’가 이 부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 핵심적인 내용은 광속으로 운동하던 자아가 광속에 비해 지극히 느린 세상인 3차원을 만나게 되면 절망하여 탄생하게 되며, 순간을 살다가 다시 자아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직선(直線)은 원(圓)을 살해(殺害)하였는가 

 LA LICNE A-T-ELLE ASSASSINÉ LE CER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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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구절}=> : 직선은 원을 살해하였는가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감안하여 이 질문을 이해하기 쉽도록 다시 쓴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자아는 육신을 살해하였는가?

다시 알기 쉽게 풀어 말한다면, 자아를 깨닫는다는 것은 육신의 삶이 무의미함을 안다는 것인가?

이 질문은 독자들을 향한 것임과 동시에 그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그 자신의 각오를 다지는 부분이다.

그가 목숨을 걸고 단식하며 깨달음을 얻고 보니, 육신의 삶이란 것이 깨달음 그 자체인 자아 세계에 비하여 너무나 찰나적이고 무의미한 것이어서  그 짧은 육신의 삶마저 자아와 함께 살기로 작정하고 실행하여 버리는 것이다. 

그의 소설 ‘지도의 암실’에서 나오는 황포차 에 앉아서 수행하는 일이 바로 그것인데, 결국 그는 육신을 굶겨 박제로 만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수행이었기에 그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이 문장을 두껍게 강조하여 쓴 것이다.

 

 

현미경(顯微鏡)

 그 밑에 있어서는 인공(人工)도 자연(自然)과

 다름없이 현상(現象)되었다. 

 Un microscope 
 Dessous, l'artifice comme la nature deviennent identiquement des phénomè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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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구절}=> : 현미경

제 7구절}=> : 그 밑에 있어서는 인공도 자연과 다름없이 현상되었다.

 

 이 부분은 그의 수행을 용의주도하게 은폐하였다고 고백하는 부분이다. 


현미경은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만들어주는 도구이며, 인공이란 ‘날개’ 소설의 말미에 나오는 인공의 날개 에서 보듯이 사람이 자아를 깨닫기 위해 각고의 노력이나 수행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해석하면 그가 육신을 박제로 만들어 죽은 끔찍한 수행은 주변의 사람들이 아무리 주의 깊게 관찰했다 하더라도 눈치 채기 어려웠을만한 자연 현상-‘종생기’의 탕아, 술객 처럼 주색에 빠져 폐병을 얻어 폐인의 행동으로 위장한 삶-으로 받아 들여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러난 부분이다. 

 

 

 

 

 

                ☓


 

제 8구절}=> : 같은 날의 오후(午後) 

 

L'après-midi du même j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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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날에 ' 이 글의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에게 있어서 육신이 가지는 세월의 흐름은  별 뜻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맥으로 보아서 그저 전술한 삶을 살아온  어느 날 정도로 여기면 무리가 없겠다.

'오후' 라는 시간 설정은 곧바로 뒤에 연결되는 시어인 태양과  관계를 갖게 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제 9구절}=> : 물론(勿論) 태양(太陽)이 존재(存在)하여 있지 아니하면 아니 될 

제10구절}=> : 처소(處所)에 존재(存在)하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11구절}=> :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보조(步調)를 

제12구절}=> : 미화(美化)하는 일까지도 하지 아니하고 있었다. 

Non seulement, bien sûr, le soleil se trouvait ou il ne pouvait 

pas ne pas se trouver, mais il n'embellissait même pas la cadence 

qui ne pouvait pas ne pas l'ê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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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쓴 태양의 의미는 자아의 세상을 대변하고 있다.  핵심은 보조를 미화하는 일의 뜻을 아는 것인데,  그에게 있어서 보조, 즉 걷는다는 일은 수행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의 소설 ‘지도의 암실’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인류사를 통하여 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생활 패턴 즉, 세상에 태어나고 자라서 결혼하여 아이를 생산하고 다시 늙어 죽는 대를 잇는 삶들,  다시 말하여 동식물들의 삶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반복적인 영장류의 일생들에 대하여 의미가 없다고 불평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예나 지금이나 늘 태양은 그 자리에 있어왔고,  사람들은 원시시대나 그가 살았던 20세기의 문명시대나  늘 먹고 번식하는 동물적인 삶에 매몰되어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와 일치되어 살려는  수행자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어서 실망하고 있다는 말이다.

 


제13구절}=> : 발달(發達)하지도 아니하고 발전(發展)하지도 아니하고 

제14구절}=> : 이것은 분노(憤怒)이다. 

 

 Il n'y a pas de progrès ni d'évolution 
 C'est la colè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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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불평과 실망을 넘어서 이제 분노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인류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명멸해갔던 수많은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했던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말인가~! 

호통하여도 에코우가 없었던 그의 시대와  인류사 전반에 대하여 시인은 절규하고 분노하는 모습이다.

 


제15구절}=> : 철책(鐵柵) 밖의 백 대리석(白 大理石)

건축물(建築物)이 웅장(雄壯)하게 서 있던 

제16구절}=> : 眞眞(진진) 5"의 각(角) 바아의 나열(羅列)에서 

제17구절}=> : 육체(肉體)에 대(對)한 처분(處分)을 센티멘탈리즘하였다. 

 

 Dans un alignement de barres avec angles de zéro degrés cinq secondes 
 Où se dressait, grandiose, un immeuble de marbre blanc derrière une grille de fer  
 J'ai été pris d'un vague sentimentalism devant la liquidation de ce cor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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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간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던 반면에 그의 삶은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종생기’의 독화 부분과 그 주변과도 밀접하게 상통하는 부분이다.


철책(鐵柵)은 발전도, 발달도 없는 인류의 행동 패턴의 한계를 나타내는 말이며, 그 패턴의 울타리를 벗어난  자아의 세계가 고귀하고 끝없이 광대함을 나타내는 상징이 백 대리석 건축물이다. 

'진진 5"의 각 바아의 나열에서' 라는 싯귀는 건축과 토목에 쓰이는 측량 도구에서 빌어온 것으로 생각되는데,  진진0“는 완벽한 직선을 의미하므로 진진5”는 미세하게 굽은 직선을 뜻하여, 이것은 이미 ‘선에 관한 각서4’나  ‘광녀의 고백’에서 나오는 구란(勾欄) 이라는 시어로 이미 사용한  바가 있다.

육체에 대한 처분이 잘 드러난 것은  그의 ‘시제8호’의 제2부 시험이며 '센티멘탈리즘하였다.'  라는 표현은 약간의 반 어법적인 느낌이 강하다. 

‘시제8호’의 제2부시험의 내용이 무생물을 재단하고 조각하듯이 기계적으로 육신을 처분하는 방법임을 감안하면 결코 센티멘탈리즘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일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이 부분에서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사람들이 틀에 박힌 삶을 살아왔지만 그는 그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육신을 굶겨 박제를 만들었고 그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 내용 역시 그의 소설 ‘종생기’에서 스스로 고백한 문구와 동일하다.

 

 

 

제18구절}=> : 목적(目的)이 있지 아니하였더니 만큼 냉정(冷靜)하였다. 

 N'ayant pas de projet, j'ai gardé mon sang fro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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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이 사는 목적은 행복한 삶일 것이다. 

 그 의미는 사람들 숫자만큼이나 다르고 또 많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열의 아홉은 행복이 삶의 목적일 것이다. 그에게는 그런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냉정하게 육체를 처분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한 목적은 무엇이었다는 말인가?  이어지는 글에 그 답이 나온다.

 

 

제19구절}=> : 태양(太陽)이 땀에 젖은 잔등을 내려 쬐였을 때 

제20구절}=> : 그림자는 잔등 전방(前方)에 있었다. 

 

Quand le soleil enfin a chauffé mon dos mouillé de sueur 
 L'ombre se trouvait devant le 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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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그가 살고 있는 곳이 세상 사람들과는  정 반대라는 것을 밝히는 부분인데, 그림자는 잔등 전방에 있었다 는 표현이 그것이다. 

보통의 경우 태양이 등 뒤에서 비치면 그림자는  가슴 방향에 드리우지만 그는 세상 사람들의  생활 패턴과 달리 살고 있으므로 그림자가  등 쪽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전술했다시피 그의 삶의 목표가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는 정 반대라는 것을 뜻하며, 그런 이유로  육체를 냉정하게 처분했다는 것이다.

또한 태양이  땀에 젖은 잔등을 내려 쬐였을 때 라는 표현은  그의 소설 ‘날개’에 나오는 미스꼬시 옥상에서 금붕어를 보는 장면과도  연결되는데, 등허리가 따뜻하다 라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그 때 그가 느꼈던 감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그의 행복은 육신의 영화에 있지 않고, 햇빛으로 상징되는  자아와 육신의 등이 일치되는 자아 합일에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인 바, ‘지도의 암실’에 나오는 등에서 비치는 햇볕이 너무 따뜻하여그런지 잠은 번쩍번쩍한다 또한 동일한 표현이다.

부차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땀에 젖은 잔등 이란 표현은  그가 오랜 단식수행으로 허약해져서 식은 땀을 흘리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삶의 방식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제21구절}=> : 사람은 말하였다. 

제22구절}=> : 「저 便秘症 患者는 저 富者 집으로 食鹽을 얻으려 

제23구절}=> :  들어가고자 希望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 

L'homme a dit : 
 << Ce souffreteux constipé veut entrer dans une maison de riche pour 

demander du se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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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말하였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말할 나위 없이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것이다. 

「저 변비증 환자 저 부자 집으로 식염을 얻으려 들어가고자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변비증 환자 또한 먹은 것이 없어 여러 날 동안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그의 육신의 상태를 이르는 것이다. 

이런 변비증에 소금물을 들이키면 설사를 유발하여  변비가 해소될 것인 바, 그는 소금을 얻으려고 모르는 
부잣집에 들어가 소금을 얻으려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귀한 물건의 상징으로 소금을 떠올렸을 그가 살았던 시대,  부잣집에서 낯선 사람에게 선뜻 소금을 내어줄 리는 없다란 의미다. 

 그런 DNA를 가진 사람이라면 부자가 될 리가 없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는 문장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의 해석은 그의 삶의 목적이 육신을 박제로  만드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일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것을 해내고야 말았으니 참으로  무서운 사람임에 틀림없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 글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어리둥절하고 믿기가 어려울 것이나, 졸저인 「에코우」나 「 날개와 삼차각 설계도」, ‘지도의 암실’, ‘종생기’의 해설을  읽은 독자라면 이미 친숙한 내용이 될 것임을 보증하겠다.

 참고로 말한다면, 원을 관통하는 직선에 관한 생각은  그의 소설 ‘휴업과 사정’에서도 같은 형태로 등장하는데,  SS가 침을 뱉어 원 안에 떨어지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참조 :

 청가인 님의 이상 시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준열찬 그의 이상 시에 관한 견해 해석문을 존중하여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